무엇이 제기됐나
소니뮤직퍼블리싱(Sony Music Publishing)과 워너채플뮤직(Warner Chappell Music) 등 음악 출판사 35곳이 8월 28일(현지시각) 앤트로픽(Anthropic)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제출됐으며, 앤트로픽 외에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와 공동창업자 벤저민 만(Benjamin Mann)도 피고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원고들은 앤트로픽이 챗봇 클로드(Claude)를 학습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저작권 보호 저작물을 불법 토렌트·스크래핑·다운로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유니버설뮤직그룹(Universal Music Group)도 올해 같은 법원에 앤트로픽을 제소한 바 있어, 이번 소송으로 세계 3대 음반사가 모두 앤트로픽과의 법정 다툼에 나서게 됐습니다. 소니뮤직과 워너채플은 곡당 최대 15만 달러(약 2억 원), 저작권 위반 건당 최대 2만 5,000달러(약 3,375만 원)의 법정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왜 ‘음악’이 아니라 ‘가사와 악보’인가
이 지점이 이번 소송의 성격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앤트로픽은 스노(Suno)나 우디오(Udio)와 달리 음악을 직접 생성하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클로드는 텍스트 기반 언어모델이므로, 이번 소송의 초점도 오디오가 아니라 가사와 악보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진행된 서적 저작권 소송 ‘바르츠 대 앤트로픽(Bartz v. Anthropic)’에서 드러난 사실과 직접 연결됩니다. 해당 소송 과정에서 아모데이가 클로드 모델 학습을 위해 최소 700만 권의 해적판 서적을 해적 사이트에서 내려받도록 팀에 승인했고, 동시에 웹 크롤러로 인터넷상의 대량 텍스트를 긁어모았다는 사실이 법정 기록으로 확인됐습니다.
소니와 워너 등 음악 출판사들은 이렇게 확보된 해적판 서적들 가운데 수백 종의 노래집·가사집·악보집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라이릭파인드(LyricFind) 등 웹사이트에서 크롤러로 긁어온 가사까지 더하면, 저작권이 침해된 작품 수가 수만 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입니다. 즉 이번 소송은 새로운 유형의 침해 주장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대규모 해적판 서적 확보 행위 안에서 음악 관련 콘텐츠를 별도로 특정해 제기한 소송이라는 성격을 갖습니다.
소장에 담긴 구체적 사례들
소송장은 앤트로픽을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뻔뻔한 지적재산권 절도 행위의 주범 중 하나”로 규정했습니다. 48쪽에 달하는 소장에는 마빈 게이·태미 테렐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비롯해 “Eye of the Tiger”, “Here Comes Santa Claus” 등 구체적인 곡명이 침해 사례로 명시됐습니다.
소니뮤직과 워너채플은 업계 2위와 3위 음악사입니다. 이들은 수천 건의 곡이 도용됐다고 주장하며, 총 배상 청구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앤트로픽 대변인은 “이미 법원에 제기된 사건들의 주장을 재활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습니다. 대변인은 “생성형 AI 모델 학습은 바르츠 사건에서 법원이 인정한 것처럼 변혁적 공정이용(transformative fair use)에 해당하며,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바르츠 판결이 만든 법리적 프레임
이번 소송에서 원고 측 변호인단이 특히 주목한 대목은, 앤트로픽이 올해 초 저자·출판사들과 진행한 바르츠 사건에서 15억 달러(약 2조 250억 원) 규모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한 사실입니다.
해당 사건 담당 판사의 판단은 이번 음악 소송의 법리적 토대가 됩니다. 판사는 저작권 보호 콘텐츠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것 자체는 허용되지만, 그 콘텐츠를 해적판으로 확보하는 행위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AI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 적용에서 중요한 구분선을 그은 것입니다. 즉 ‘학습 행위’와 ‘확보 방식’을 분리해서 보는 프레임입니다. 정당하게 구매하거나 라이선스한 콘텐츠로 학습시키는 것은 공정이용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지만, 해적판을 통해 콘텐츠를 확보하는 행위 자체는 그와 별개로 위법하다는 논리입니다.
소니와 워너 소송을 맡은 변호인단은 저자 측 소송에서도 활동한 인물들로, 같은 법리를 음악 저작물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르츠 판결이 서적 저작권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텍스트 형태로 존재하는 모든 저작물(가사, 악보, 대본 등)로 확장 적용될 수 있는 선례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합의금 전례가 만든 ‘소송 유인 구조’
이 15억 달러 합의는 출판업계 전반에 분명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앤트로픽에게 배상할 능력과 의지가 모두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소송이라는 것은 원고 입장에서 승소 가능성뿐 아니라, 승소하더라도 피고가 실제로 배상할 자금력이 있는지가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앤트로픽이 이미 대규모 합의금을 지급한 전례가 생기면서, 700만 권에 달하는 해적판 서적에 얽힌 저작권자들이 잇따라 배상을 청구하고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음악 대기업들의 이번 소송도 이런 흐름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음악업계의 이중 전략: 소송과 라이선스 사이
소니와 워너의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콘코드뮤직그룹(Concord Music Group)과 유니버설뮤직그룹이 앤트로픽을 상대로 낸 소송에 이어, 지난 3월 BMG가, 한 달 전에는 라운드힐뮤직(Round Hill Music)이 유사한 불법 스크래핑 혐의로 앤트로픽을 제소했습니다.
음악업계는 생성형 AI 기업을 상대로 소송과 라이선스 계약 사이를 오가며 대응해왔습니다. 통상 소송을 먼저 제기한 뒤 협상을 통해 계약을 맺는 방식입니다. 이는 소송을 단순히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수단이 아니라, AI 기업과의 라이선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소송 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 콘텐츠 사용료를 낮게 책정당할 위험이 있지만, 법적 리스크를 먼저 부각시키면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패턴은 음악을 직접 생성하는 AI 서비스 스노(Suno)와 우디오(Udio)를 상대로 한 대응에서도 확인됩니다. 워너뮤직그룹은 두 생성형 AI 업체를 상대로 한 소송을 모두 합의로 마무리했고, 유니버설뮤직은 우디오와는 계약을 맺었지만 스노를 상대로는 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소니뮤직은 두 업체 모두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니뮤직은 자사 및 계열 레이블 9곳 명의로 우디오를 상대로 3만 117곡에 대한 별도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우디오 측은 유튜브에서 얻은 오디오 데이터를 훈련 데이터로 사용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백엔드 기술 프로세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공정이용”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리: AI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법적 전선의 확대
- 소송 구조: 3대 음반사(유니버설·소니·워너)가 모두 앤트로픽을 상대로 소송 제기, 텍스트 기반인 클로드 특성상 오디오가 아닌 가사·악보 침해에 초점
- 법리적 기반: 바르츠 판결이 확립한 “학습은 허용, 해적판 확보는 위법”이라는 구분선을 음악 저작물에도 적용 시도
- 배상 규모: 곡당 최대 15만 달러, 총 청구액이 수십억 달러에 이를 가능성
- 업계 전략: 소송과 라이선스 협상을 병행하며 지렛대로 활용하는 패턴이 텍스트 AI(앤트로픽)와 음악 생성 AI(스노·우디오) 양쪽에서 동시 진행
이번 소송은 AI 기업들이 대규모 언어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확보한 데이터의 출처 적법성이, 텍스트를 넘어 음악·이미지 등 모든 창작물 영역으로 법적 쟁점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 향후 AI 기업들의 데이터 수집·라이선스 관행 자체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