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스 탈출 3개월 만의 초고속 밸류업
로봇에게 세상을 가르치는 데이터를 파는 스타트업 XDOF가 창업 2년, 스텔스 모드를 벗어난 지 불과 3개월 만에 몸값 12억 달러(약 1조 6,20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테크크런치(TechCrunch)가 처음 보도한 내용으로, 벤처캐피털 8VC가 이번 라운드를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속도가 이례적입니다. 지난 6월 7,000만 달러(약 945억 원) 규모 시리즈A를 마감한 지 불과 두세 달 만에 나온 후속 라운드이기 때문입니다. 통상 시리즈A와 시리즈B 사이에는 최소 1년 이상의 성장 검증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로보틱스 데이터라는 신생 분야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페이스입니다.
창업 배경: 연구자가 마주친 ‘데이터 부재’라는 벽
XDOF는 2024년 10월 필립 우(Philipp Wu), 프레드 셴투(Fred Shentu), 니모 진(Nemo Jin)이 공동 창업했습니다. 우는 CEO, 셴투는 CTO를 맡고 있으며 두 사람 모두 UC버클리 출신 연구자입니다.
창업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우가 박사과정 연구 중 대규모 로봇 학습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에 직접 부딪히면서 회사 아이디어가 시작됐습니다. 이는 실제 연구 현장에서 발견한 구조적 병목을 창업 아이템으로 전환한 전형적인 사례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두 사람이 만든 저비용 원격조작 시스템이 바로 **’GELLO’**입니다.
왜 로봇에게는 ‘ChatGPT의 인터넷 텍스트’ 같은 게 없는가
XDOF의 사업을 이해하려면 거대언어모델(LLM)과 로봇 AI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짚어야 합니다. LLM은 인터넷 전체에 쌓인 텍스트를 학습 재료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웹페이지, 책, 코드 저장소 등 이미 존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크롤링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그런 인터넷급 데이터 창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봇이 물리 세계에서 물건을 집고, 옷을 개고, 통로를 이동하는 행동 데이터는 애초에 인터넷에 쌓여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탁물을 접는 로봇팔이나 어지러운 통로를 다니는 창고 로봇이 실제 환경에 일반화되지 못하고 헤매는 근본 이유입니다. 텍스트나 이미지와 달리, 물리적 행동 데이터는 누군가 실제로 몸을 움직여 만들어내야만 존재합니다.
이 공백을 메우려는 스타트업 경쟁이 로보틱스 AI 인프라 붐 안에서 가장 뜨거운 하위 분야로 떠올랐습니다.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 스킬드AI(Skild AI), 코베리언트(Covariant) 등도 비슷한 물리 AI 베팅에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상태이며, 로봇 데이터 수집 경쟁에는 메카AI(Mecka AI), 스케일AI(Scale AI), 마이크로1(Micro1) 등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데이터 피라미드’: XDOF가 데이터를 만드는 방식
XDOF는 자사 데이터 수집 체계를 **’데이터 피라미드’**라고 부르며, 원격조작 도구와 데이터 파이프라인, 전 과정을 아우르는 툴링을 함께 제공합니다.
핵심 도구는 앞서 언급한 GELLO입니다. 사람이 원격으로 로봇팔을 조종해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으로, 여기에 더해 센서를 착용한 사람이 옷을 접거나 상자를 접는 등 일상 작업을 직접 수행하며 데이터를 기록하는 방식도 병행합니다.
이 두 방식의 조합이 기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는, 로봇 원격조작(teleoperation)과 인간 동작 캡처(motion capture)가 각각 다른 종류의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원격조작 데이터는 로봇 관절·액추에이터의 실제 제어 신호와 직결되는 반면, 인간 동작 데이터는 더 자연스럽고 유연한 동작 패턴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두 방식을 병행하면 로봇 학습 모델이 정확한 제어와 자연스러운 동작 양쪽을 모두 학습할 여지가 커집니다.
XDOF는 이런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을 원격조작자와 수집팀을 전 세계에서 채용해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UC버클리, MIT와 손잡고 양손 로봇 조작을 위한 오픈소스 데이터셋 **’ABC-130K’**를 공개했는데, 13만 개 궤적과 195개 양손 작업을 담아 해당 분야 최대 규모 오픈소스 데이터셋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합니다. 오픈소스 데이터셋 공개는 학계·업계에서 인지도와 신뢰도를 동시에 쌓는 전형적인 전략으로, 상업적 데이터 판매와 병행하는 ‘프리미엄(freemium)식’ 접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매출 지표가 보여주는 실체
XDOF는 현재 약 60명 규모 직원으로 약 20개 고객사와 거래하고 있으며, 이 중 다수가 프런티어 AI 연구소와 로보틱스 기업입니다. 연환산매출(ARR)은 약 5,000만 달러에 근접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직원 60명 대비 연 매출 5,000만 달러라는 조합은 상당히 인상적인 자본 효율성을 시사합니다. 이는 XDOF의 사업 모델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 없이도 확장 가능한,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이면서도 소프트웨어 마진을 낼 수 있는 구조임을 보여줍니다. 회사는 원래 이렇게 빨리 다시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 없었지만, 성장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투자자들이 먼저 접촉해 새 라운드가 성사됐다는 설명입니다.
“물리 로보틱스를 위한 스케일AI”라는 비유의 의미
일부 투자자들은 XDOF를 **”물리 로보틱스를 위한 스케일AI(Scale AI)”**라고 부릅니다. 스케일AI는 AI 붐을 뒷받침한 데이터 라벨링 기업으로, 챗GPT를 비롯한 여러 LLM의 학습 데이터를 가공·공급하며 급성장했습니다. 이 비유는 XDOF가 로보틱스 업계 전체를 위한 외주 데이터 공급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비유가 시장에서 통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스케일AI가 텍스트·이미지 라벨링이라는, 개별 AI 기업이 직접 하기엔 비효율적인 작업을 아웃소싱 받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듯, XDOF는 로봇 행동 데이터 수집이라는 노동집약적이고 물리적 인프라(로봇팔, 센서, 훈련된 원격조작자)가 필요한 작업을 대신 수행합니다. 개별 로보틱스 기업이 자체적으로 전 세계 원격조작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보다, XDOF 같은 전문 데이터 공급업체에 위탁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투자 심리의 변화: ‘검증’에서 ‘속도’로
투자자들은 한때 스타트업이 10억 달러대 몸값을 인정받기까지 2~3년간 사업모델을 증명해야 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확신과 속도 자체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짚었습니다. 칩이나 데이터 파이프라인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AI 생태계의 근간이 되는 인프라 기업들이, 파운데이션 모델 연구소 못지않은 속도로 자금을 조달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AI 투자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합니다. 데이터·인프라 계층 기업들이 더 이상 ‘조용한 후방 지원 산업’이 아니라, AI 붐의 확장을 가로막는 병목을 직접 해소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로봇 학습 데이터 부족이 물리 AI 발전의 핵심 병목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이 병목을 해결하는 기업에 자본이 먼저 몰리는 것은 합리적인 시장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남은 불확실성
다만 아직 이번 라운드의 세부 조건, XDOF의 정확한 매출·고객 구성, 경쟁사와 차별화된 데이터 수집 방식 등 구체적인 정보는 많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스텔스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회사로서는 이례적인 일은 아니지만, 이는 곧 시장이 검증된 성과보다는 잠재력에 베팅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리
- 속도: 창업 2년, 스텔스 탈출 3개월 만에 시리즈B 논의 — 시리즈A 마감 후 불과 2~3개월 만의 후속 라운드
- 문제 정의: LLM과 달리 로봇에게는 ‘인터넷급 데이터 창고’가 없다는 구조적 공백을 공략
- 사업 모델: 원격조작(GELLO)과 인간 동작 캡처를 병행하는 ‘데이터 피라미드’ 방식으로 고품질 로봇 학습 데이터 생산
- 시장 포지셔닝: 텍스트·이미지 데이터의 스케일AI에 대응하는 ‘물리 데이터의 스케일AI’로 자리매김
- 투자 심리: 사업모델 장기 검증보다 성장 속도와 병목 해소 잠재력을 우선하는 최근 AI 인프라 투자 흐름의 대표 사례
XDOF의 사례는 결국,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이 격화될수록 그 모델을 학습시킬 ‘재료’를 공급하는 기업의 가치가 함께 재평가받는다는 AI 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