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부터 다른 접근
두바이상공회의소(Dubai Chambers)가 9월 7일(현지시각) 민간기업 1만4000곳 이상을 대상으로 전문 에이전틱 AI(Agentic AI,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까지 하는 AI)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두바이 왕세자 함단 빈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Hamdan bin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의 지시로 추진되는 민간 부문 AI 전환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1만4000곳이라는 숫자가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이는 특정 대기업이나 첨단산업군에 한정된 시범 사업이 아니라, 도시 전체 민간 부문을 대상으로 한 산업 전환 전략이라는 뜻입니다. 개별 기업이 자발적으로 AI 도입을 결정하고 컨설팅을 받는 통상적인 방식과 달리, 정부 차원의 지시에 따라 하향식(top-down)으로 설계됐다는 점이 이번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왜 ‘에이전틱 AI’인가 — 챗봇과의 결정적 차이
이번 교육이 겨냥하는 대상은 일반적인 생성형 AI 활용 교육이 아니라 에이전틱 AI에 특화돼 있습니다. 이 구분은 실무적으로 중요합니다.
기존의 생성형 AI(챗봇형)는 질문에 답하거나 텍스트·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그치지만, 에이전틱 AI는 목표를 주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의 작업을 순차적으로 실행하며, 필요하면 외부 도구나 시스템을 호출합니다. 예컨대 “이번 달 재고 발주를 최적화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데이터 조회부터 분석, 발주서 작성, 승인 요청까지 연쇄적으로 처리하는 식입니다.
두바이상공회의소 회장 술탄 빈 사이드 알 만수리(Sultan bin Saeed Al Mansoori)가 “복잡한 업무 관리를 돕고 더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며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낸다”고 언급한 것도 이 지점을 겨냥합니다. 단순 정보 검색·요약을 넘어,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개입하는 AI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실전형 교육 설계: ‘이해’가 아니라 ‘적용’
교육은 새로 마련된 통합 이러닝 플랫폼 두바이상공회의소 아카데미(Dubai Chambers Academy)를 통해 진행됩니다. 참가 기업은 에이전틱 AI를 업무에 적용하는 실무 가이드를 제공받으며, 운영·효율성·생산성·의사결정을 개선할 수 있는 도구와 솔루션을 직접 살펴봅니다.
주목할 점은 교육 목표가 ‘기술 이해’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 만수리 회장은 “민간 부문이 에이전틱 AI를 이해하고 그 가능성을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즉 이론 교육이 아니라 각 기업이 자신의 사업에 맞는 활용 분야를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까지 포함하도록 설계됐습니다. 기업 규모나 업종에 상관없이 실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역량 확보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설계는 AI 도입 실패의 흔한 원인, 즉 ‘기술은 도입했지만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수의 기업이 AI 도입에 실패하는 이유가 기술 자체의 한계보다 조직 내 활용 역량 부족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무 적용력에 초점을 맞춘 접근은 합리적인 설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넘어선 3단 구조: 인큐베이터와 전담위원회
이번 교육은 두바이상공회의소가 추진하는 더 넓은 프로그램의 한 갈래일 뿐입니다. 전체 프로그램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 교육(Education): 두바이상공회의소 아카데미를 통한 실무 역량 강화
- 인큐베이팅(Incubation): 에이전틱 AI 솔루션을 개발·배포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 에이전틱 AI 기업 전용 인큐베이터 설립
- 거버넌스(Governance): 에이전틱 AI 전담 실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 for Agentic AI) 구성
이 3단 구조는 AI 전환 정책에서 흔히 나타나는 ‘교육은 했지만 실행 지원이 없는’ 또는 ‘스타트업은 지원하지만 기존 기업의 채택률이 낮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설계로 읽힙니다. 기존 민간기업에는 교육으로 채택을 유도하고, 새로운 AI 기업에는 인큐베이터로 공급망을 강화하며, 전담위원회로 정책·표준을 조율하는 구조입니다. 도입 단계부터 확산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정부 기구가 관리하는 방식은, 민간 자율에 맡기는 시장 중심 접근과는 뚜렷이 대비됩니다.
국가 브랜딩 전략과의 연결
두바이상공회의소는 비영리 공공기관으로, 두바이의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 비전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 역시 이 큰 그림 안에 있습니다. 즉 단순히 자국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두바이를 디지털 경제와 미래 산업의 글로벌 허브로 자리매김시키려는 국가 브랜딩 전략의 일부로 봐야 합니다.
이는 두바이가 과거 금융·물류·관광 허브로 자리 잡았던 전략과 유사한 패턴입니다. 규제 샌드박스, 세제 혜택, 인프라 투자를 결합해 특정 산업의 지역 허브가 되려는 시도를 AI 분야에도 적용하는 셈입니다. 왕세자가 직접 지시해 추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이 전략이 개별 부처 차원이 아니라 국가 최상위 의사결정선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적 흐름 속의 두바이
에이전틱 AI를 향한 움직임은 두바이만의 흐름이 아닙니다. 예컨대 엔비디아(Nvidia)는 최근 스페이스X AI(SpaceX AI)의 차세대 에이전틱 AI 인프라에 신형 CPU 베라(Vera)를 공급한다고 밝히며, 에이전트가 단순 답변 생성을 넘어 실제 작업을 수행하려면 새로운 컴퓨팅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는 에이전틱 AI 전환이 두 개의 트랙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쪽에서는 엔비디아 같은 인프라 기업들이 에이전트 실행에 필요한 컴퓨팅 하드웨어를 고도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두바이 같은 도시·국가가 실제 기업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실무 역량을 키우는 작업을 병행합니다. 인프라와 인력 역량이라는 AI 전환의 두 축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정리
- 규모와 방식: 1만4000개 기업 대상, 왕세자 지시에 따른 하향식 도시 전체 전환 전략
- 교육 초점: 단순 챗봇이 아닌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에 특화, 이해를 넘어 실무 적용력 강조
- 3단 지원 구조: 교육(아카데미)-인큐베이팅(스타트업 지원)-거버넌스(전담위원회)를 통합 운영
- 전략적 맥락: 개별 기업 생산성 향상을 넘어, 두바이를 AI 시대 글로벌 허브로 포지셔닝하려는 국가 전략의 일환
기술 인프라 투자가 세계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두바이의 이번 시도는 ‘기술을 어떻게 실제 업무에 적용시킬 것인가’라는 채택(adoption) 단계의 과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